JOURNAL/음악의 순간

교재와의 실랑이 기꺼이 감당하기

2022. 07. 27

FOR LESSONER

교재와의 실랑이 기꺼이 감당하기


신(神)은 음악을 사랑했겠지만 교재를 만들진 않았다. 완전무결한 교재는 없다. 특정 교재에 대한 맹신이나 자기방어적인 교재 선택 자세는 버려야 하지 않을까. 기존의 교재와 새로운 교재들, 주교재와 부교재들 사이에서 좌표를 잊지 않고 걸어가야 할 나날. 가르치는 목적에 적합하게 우리 스스로 고민하고 연구해야만 하는 교재의 취사선택, 그 실랑이를 감내하자.


얼마 전 필자가 운영하는 학원에서 한 학부형을 만나 제법 긴 시간을 상담하게 되었다. 학부형으로부터 받았던 느낌이 남달랐던지라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아닐까 싶었는데 역시 자녀 교육에 많은 애착을 갖고 있는 선생님 엄마였다. 상담을 하는 과정에서 우리 학원에 대한 소개, 교재에 대한 설명, 나름대로 필자가 갖고 있었던 교육관 등을 하나씩 짚어갔다. 보통의 상담보다 조금 긴 시간이었지만, 대화가 잘 통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상담을 마칠 즈음 그 학부형으로부터 이런 말씀을 듣게 되었다.

우리 엄마들이 상담을 할 때는요, 선생님의 눈빛에서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나 가르치는 일에 대한 열정을 볼 수 있어요. 짧은 상담이라도 선생님으로부터 교육에 대한 자신감 못지않게 '사랑과 열정'이 있음을 느낄 때 아이를 맡기고 싶은 마음이 확~ 다가옵니다.

최고의 교재란 저자의 의도와 가르치는 이의 노력이 하나가 될 때 빛난다. 새로운 교재를 도입하면서 단지 교재만 바뀔 뿐 저자의 의도나 새로운 교육관은 무시한다면, 그것은 아무 생각 없이 새로운 트렌드를 찾아 옮겨 다니는 철새가 아니겠는가.
"ooo 교재가 요즘 뜬다더라."
"그 교재는 너무 쉬워,"
"그 교재로 가르쳐서 애들이 뮐 치겠어?"
"그 교재로 가르치기는 쉽겠더라."
"ooo교재는 ooo랑 뭐가 달라?"
"ooo교재는 아무래도 카피 같아."

이러한 말들을 주변에서 들을 수 있었다. 좀 더 깊이 귀 기울이면 아래와 같은 생각들도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
"ooo교재는 ooo(조성, 화성 학습, 청음…)을/를 정말 쉽게 풀어 놓았더라"
"ooo교재는 ooo만 보완하면 애들 연주능력이 훨씬 좋아지겠더라."
"ooo교재는 테크닉 부분을 ooo으로 조금만 보완하면 우리 아이들에게 좋을것 같아."

내가 배웠거나 가르치던 교재가 아니라 해도 다른 교재들을 알아가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혹 새로 가르치게 된 아이가 다른 교재를 배우다 왔다고 해서 아이의 실력이 다른 교재로 배워서 부족하다는 판단을 할 수 있을까? 아이가 배워온 교재 자체에 대한 평가를 하기 이전에 부족한 부분을 향상시키고 채워나갈 수 있는 나만의 방법들은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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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Lorenzo Spoleti on Unsplash

🛫 1. 교재 선별 선택, 우리들 숙제이자 의무

사실 넘쳐나는 교재들을 다 공부한다는 것은 힘들지만 최소한 저자의 의도나 기존 교재와의 다른 포맷들을 파악하는 것은 우리 교사들의 '의무'임을 명심해야 한다. 누군가 대신해 주길 기다리거나 다른 사람들이 모두 다 하고 난 후해야겠다는 소극적인 자세를 버리고, 내 아이들을 위해서 숙제처럼 안고 있던 문제들을 해결해 나갈 방법들을 스스로 찾아가야 할 것이다.
필자는 3개월에 한 번 정도 인터넷으로 새로운 교재나 작품집들을 검색하고 선별하여 구입한다. 고리고 그 교재에 대한 분석을 한 다음 직접 연주해 본다. 또한 관련 교육에 참석하거나 저자의 다른 저서들도 함께 비교하는 시간을 강사들과 함께 갖기도 한다. 새로운 교재를 선택하지는 않더라도 이러한 방법은 피아노 교육의 움직임이나 교사들이 고민하는 공통의 과제들을 발견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아울러 피아노 교육에 있어서 다리와 손가락 이외에 귀의 역할이 중요함을 경험적으로 잘 알기에 청음에 도움이 될 만한 교재들을 활용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만일 학부모와의 상담을 원장실 책상에서 시작해서 마치는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조금 다른 방법을 찾는 것도 좋다. 예를 들어 피아노 앞으로 학부모와 아이를 데리고 가서 아이의 수준에 맞는 곡을 한 곡 먼저 들려주는 것이나 학부모와 아이 앞에서 원장이 정성껏 한 곡 연주해 보는 것도 좋다. 이때 주교재의 곡이나 부교재의 곡을 상황에 따라 선택해서 아이에게 직접 설명하며 연주해 주는 것이다. 레슨 모습을 직접 보여 주는 것이 말로 하는 상담보다 훨씬 적극적인 방법인 동시에 교재에 대한 자신감과 호소력 있는 상담일 수 있다.

oo야! 이 곡 어때? 네가 피아노를 배우게 되면 이런 곡을 연주하게 될 거야. 다음 곡은 조금 더 수준을 올려서 선곡한다 좀 더 지나면 이런 멋진 곡도 연주할 거고, 선생님이랑 한 걸음 한 걸음 즐겁게 배울 거야.

학부모님께도 연주를 들려준다. 교재의 곡을 들려주는 것도 좋겠지만, 정통 재즈곡이나 애잔한 OST라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여기에 미디나 MR이 준비되어 함께 연주한다면 너무도 감동적인 연주가 될 것이다

🛫 2. 주교재와 부교재를 유효적절하게 활용하자

어느 날 둘째 아들의 영어 교육을 위해 영어 학원에 상담을가게 되었는데, 획기적인 발음 교재를 설명하시는 원장님의 얼굴에 비치는 자신감과 의욕을 보았다. 또한 아이들에게 딱 맞는 발음 교육을 위해 5년여에 걸쳐서 직접 교재를 집필했다는 설명과 함께 어느 학원에도 없는 자신만의 노하우와 경험으로 아이의 영어를 책임지겠다는 확고한 신념을 만날 수 있었다. 그 상담 후에 문득 떠오르는 질문들이 있었다. '왜 피아노 교재만큼은 특정 교재만이 정통이라는 인식을 갖는 것인가?', '우리가 가르치는 주교재 이외에 다양한 부교재들을 활용할 수는 없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피아노를 배우는 목적에 따라, 음악적 취향에 따라 달라지는 부교재들이 주교재 못지않게 큰 역할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필자가 경험한 사례를 한 가지 소개하고자 한다.

대부분 피아노를 그만두는 시기인 중학교 1학년의 희은이는 아주 예쁘고 학구적인 아이였다. 동생은 이미 우리 학원을 다니고 있었고, 중학교 1학년이 된 봄에 다시 피아노 학원을 찾아온 경우였다. 어릴 적 체르니 100번을 배우다 그만두었다는 희은이의 실력은 딱 그만큼이었다. 게다가 피아노 학원에 올 수 있는 날은 겨우 주 1회뿐이었다. 어릴 적 배우던 교재를 들고 함께 씨름을 해보았으나 우리 둘 다 힘든 레슨이었다.

나: 희은아, 혹시 네가 꼭 치고 싶은 곡이 있니?
희은: 네, 조지 윈스턴이요.
나: 혹시 캐논 변주곡?
희은: 아뇨, 조지 윈스턴 곡은 다요~!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 연주하고픈 '캐논 변주곡'뿐 아니라, 조지 윈스턴의 모든 곡이라니! 마침 가지고 있던 조지 윈스턴 곡집을 펼쳐들고 가장 쉬운 곡부터 시작했다. 그날부터 희은이의 교재는 체르니도 소나티네도 아닌 조지 윈스턴이었다. 테크닉이 부족하긴 했지만 주 1회 레슨이라는 제약 때문에 따로 테크닉 곡집을 선택하지 않았다. 필요할 때마다 배우는 곡 안에서 요구되는 테크닉을 설명했고, 쉬운 곡부터 시작하여 효과적인 연주를 위해 프레이즈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하나씩 짚어가며 레슨을 시작했다. 이전까지 희은이가 배우던 교재보다 결코 쉽지 않은 악보들이었지만 한 곡 한 곡 배워 갈수록 테크닉은 물론, 곡에 대한 이해나 표현이 놀랄 만큼 향상되는 것을 느꼈다. 그 과정에서 필자 스스로 곡들을 분석하고 반복해서 들어보고 연주했던 것도 당연지사였다. 주 1회 레슨이었지 만 1년쯤 지난 지금 희은이는 열두 곡 정도 자신만의 레퍼토리를 가진 '제법 괜찮은 연주자'가 되어 있다.
희은이에게 동기부여가 될 수 있었던 계기가 또 하나 있다. CD에 연주한 곡들을 녹음해서 연주 모습을 찍어 멋진 재킷도 만들어 아이에게 주었던 것이다. 그 CD는 희은이에게 추억이나 성취감 그 이상의 가치로 자리한 듯하다. 그 아이의 어머니께서는 자연스레 학원 자랑을 해주셨다. 학생을 가르친 보람과 함께 학원 홍보의 보너스까지 얻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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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Lorenzo Spoleti on Unsplash

🛫 3. 음악교육에 있어서 더 절실하고 가치 있는 것들

교재 선택의 문제는 단순히 가르치는 일의 도구가 아닌 과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선택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피아노 선생님들은 이러한 고민 자체를 몹시 두려워하거나 또는 자신의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필자가 지난 호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피아노 교육에 있어서 학생들의 관심 분야와 눈높이를 무시한 교육은 결국 아이들을 멀어지게 만든다. 더 나아가 눈앞의 것들에 안주하는 교사의 안일함으로 인해 더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들에 접근하지 못하는 교육이 되고 만 것이다.
수많은 교재를 공부하고 저자의 세미나에 참석하거나 새로운 피아노 교수법들에 입각한 시도들에 대해 인정하면서도 결국엔 교사 스스로가 과거에 받았던 교육을 벗어나지 못하고, 똑같은 방법으로 돌아가는 것은 단지 피아노 교육의 현실이 열악해서라고 애써 위로하며 지나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에 우리가 받았던 피아노 교육이란 어떤 모습들일까?
피아노를 전공하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뛰어들어 교사가 된다. 그 사이 교재에 대한 문제점들을 스스로 발견하면서도 극복하지 못할 때가 있다. 틀에 맞춘 테크닉 위주의 교재 교육과 무조건적인 주입식 방법을 가진 선생님의 가르침 하에 피아노 교육이 발전할 수 있을까? 음악교육에 있어서 더 절실하고 가치 있는 것들을 놓치고 살아온 세대가 지금 우리 세대가 아닐까?
분명 피아노 교육도 입시 위주 교육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중요한 과목들에 밀려나고 있다. 늘 바쁜 아이들은 주 2회, 3회 피아노 교육에 시간을 쪼갤 수도 없고, 연습곡집들을 마치고 작품을 만져보기도 전에 다른 과목들에 밀려 피아노 뚜껑을 닫아야만 한다. 이러한 교육 상황의 변화들을 인식하면서도 새로운 교육법을 도입하기는 꺼린다거나, 현실적으로 짧은 레슨 시간과 적은 액수의 교육비 때문에 교육 여건이 개선되기 힘들다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체념한다면, 우리 피아노 선생님들은 학부모들로부터 신뢰보다는 늘 테스트 받는 심정으로 상담하고 교육하는 나날의 일상만 남겨두게 되는 건 아닐까.

🛫 4. 특정 교재만 맹신 말고 목적에 맞게 공부하자

이제 우리 스스로 도전장을 던져보아야 한다. '피아노 교육의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이 질문에 많은 답들이 있을 것이다. 필자는 여기에 딱 두 가지의 답을 하고 싶다.
첫째, 피아노가 즐겁고, 배우는 과정이 흥미롭도록 가르치자.
둘째, 아이 스스로 적극적으로 배우게 하고, 교사가 최선으로 가르치는 동안 아이들의 실력은 저절로 향상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잊지 말자.

결코 이상적인 얘기가 아니다. 물론 교사 자신의 정신적인 무장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구체적인 방법론들이 제시되고 개선되는 과정을 스스로 헤쳐나가야 한다. 피아노를 전공한 많은 피아노 선생님들의 레슨 현실은 전공자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아니다. '윤기 나는 인생에 플러스가 되라고 피아노를 가르친다'는 어느 학부형의 말처럼 대부분의 아이들이 취미나 즐거움을 위해 피아노나 악기들을 배우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모두에게 전공자의 길을 갈 수 있는 테크닉을 가르칠 시간이 우리에겐 없다. 정작 공들여 가르치고 이제 좀 칠만 할 때쯤 아이들은 피아노로부터 떠나고 만다.

교재 또한 목적에 가장 적합할 때 그 가치가 있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많은 교재들을 먼저 교사 스스로 연구해야 한다. 넘쳐나는 재교육 프로그램을 배워가는 동안 각각의 교재가 갖는 장점들과 부분적으로 보완해야 할 것들을 찾을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나만의 노하우도 갖게 될 것이다.
필자는 특정 교재만을 예로 들어 알리려는 게 아니다. 우리가 어릴 때 배웠던 바이엘이나 체르니 등의 테크닉 중심의 교재가 갖는 장점뿐 아니라, 80년대 피아노 교수법을 바탕으로 출간된 베스틴이나 알프레드가 갖는 단계별로 여러 조성을 익혀가는 교습법과 다양한 레퍼토리, 양손의 능력을 함께 발달시키는 효과적 학습법 둥의 장점들도 잊지 말자는 것이다. 더 나아가 90년 이후 창의력과 릴랙스 지도를 통해 음악성을 개발하기 위해 출간했다는 피아노 어드벤처의 교재, 달크로즈 유리드믹스나 아마데우스 등의 새로운 지도법과 그룹 레슨 등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모든 피아노 선생님들에게 같은 지도법을 제시할 수는 없다. 아이들에게 적용되기까지 각 학원 원생들의 교육 환경, 학부형들의 기대 또는 목적, 아이들 개개인의 음악적 재능의 차이 등 여러 변수들이 각각 다르게 작용한다. 교재를 선택하고 교육하기 이전에 반드시 한 곡 한 곡 분석, 검토하고 개별적인 플랜을 준비하는 과정은 훌륭한 저자도 경험이 풍부한 교수님들도 다른 학원의 성공 사례도 대신해 줄 수 없는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과정이라고 하겠다. 그 과정을 통해 교사 스스로 선택에 대한 자신감과 더불어 가장 효과적이고 체계적인 나만의 교습법을 갖게 될 것이다.

피아노 교사는 축복받은 사람들이다. 다른 사람들이 갖지 못한 음악적인 재능을 갖고 태어난 것 자체만으로도 축복이며, 교사의 위치에 가기까지 각고의 노력과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낸 사람들이다. 그러나 교사가 되어서도 배움의 길을 접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교사'들은 한순간도 잊지 말고 기꺼이 감당해야 할 것이다.


김은미 원장

명음 피아노 학원장. 3년의 강사생활, 6년의 교습소 운영, 2년의 재택 레슨과 출장 레슨, 그리고 8년째 피아노 학원 운영 중


🚫 위 내용은 뮤직 프렌즈 매거진(Music Friends Magazine) 2008년 1월호 28-30쪽에 실려 있습니다. 무단 전재와 복제, 전송하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습니다.